안녕하십니까, 강릉 출신 박인균 의원입니다.
존경하는 한금석 의장님, 그리고 선배ㆍ동료 의원 여러분!
오늘 발언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최문순 지사님, 그리고 민병희 교육감님, 그리고 공직자 여러분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온 마을이 같은 날 저녁 불을 밝히며 제사를 지낸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순이 삼촌’이라는 문학작품이 있습니다.
한날한시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같은 날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선박의 침몰 등 대형사고도 있을 수 있으나 현기영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려낸 것은 군경과 서북청년단에 의하여 저질러진 민간인 살육사건, 소위 제주의 4ㆍ3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주에서는 2000년 1월 4ㆍ3특별법이 공포되고 나서 1만 4,000명 이상의 민간 희생자가 접수되고 4ㆍ3평화공원이 조성되어 그 아픔과 억울한 죽음을 위령하고 있습니다.
4ㆍ3사건 같은 억울한 민간인 학살사건이 어찌 제주뿐이었겠습니까?
광복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짧은 기간 동안 보도연맹사건, 거창, 함안, 노근리 등등 전국 곳곳에서 군경과 미군, 그리고 인민군에 의하여 재판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이 학살된 아픈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격동과 야만의 시대를 우리 강원도라고 비껴갈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 전 7월 말 MBC 강원영동방송에서 삼척ㆍ강릉ㆍ양양ㆍ속초ㆍ고성 등 영동지역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숨’이라는 제목의 다큐를 방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국에서 제일 먼저 집단학살이 벌어진 곳이 다름 아닌 횡성ㆍ원주였다고 합니다.
20여 년 전에 그 학살에 참여하였던 분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께서도 집안이나 친지, 이웃들을 살펴본다면 그 시기에 희생된 분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쉬쉬하며 가슴앓이하듯 안고 살아온 이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을 겁니다.
2005년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근거하여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광복 후 국가와 공권력에 의하여 저질러진 반민주적 혹은 반인륜적 인권유린, 폭력, 학살행위 등 지금까지 묻혀온 피해사실들에 대하여 진실을 밝혀 국민 화해와 통합을 이루려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 결과 2005년 12월 1일부터 2006년 11월 31일까지 민간학살 관련하여 강원도에서 13건이 접수되고, 3년여에 걸쳐 유해발굴이 1,600여 점, 유품 6,000점 정도를 확보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러한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수치이고 빙산의 일각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짧은, 한시적 접수의 시간 부족, 중앙정부 및 지자체, 그리고 관계기관의 적극적이고 원활한 협조와 의지의 부족, 피해자 본인 또는 가족의 방문접수, 그리고 위원회의 규모나 인력에 비하여 군의문사, 간첩단 조작사건, 정치음모사건 등등의 다양하고 과중된 업무, 홍보 부족, 또한 피해자 가족 등의 위축된 피해의식으로 인한 기피 등등의 사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의 유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글로벌한 사회에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경제적 이해관계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왜 이리 가혹하고 잔혹한 것입니까?
아직도 우리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제대로 위로하지도, 올바른 조사나 평가도 하지 못한 채 과거 냉전시대의 대결구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거의 한 세기가 다 되도록 야만과 광기에 희생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살당한 사람들에 대하여 떳떳하게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부역자 가족이라는 주변의 눈총 속에 숨죽이고 살아 왔으며, 연좌제를 구실로 행해진 각종 불이익과 심지어 출세에 혈안이 된 서슬 퍼런 공안기관의 먹잇감이 되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남북 화해와 공존을 위하여 동북아의 발전과 교류를 꿈꾸는 이즈음 우리도 내부적으로 선결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오랜 반목과 갈등ㆍ증오에서 벗어나 화해와 용서, 그리고 한을 품고 죽어간 이들에 대한 위령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객관적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이미 많은 지자체와 국회에서 이러한 점에 공감하여 조례를 만들고 치유의 노력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원도도 늦었지만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화해와 평화와 공존의 아름답고 발전된 강원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